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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으로 먼저 한 번, 영화로 두 번, 다시 각본으로 세 번. 2016년 영화를 개봉 했을 때에도,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방구석 1열’에서 박찬욱 감독 영화가 소개되었을 때에도 끌리지 않던 ‘아가씨’였는데.. 마감 시간을 앞 둔 집 근처 서점에서 급하게 고른 책이 ‘아가씨 각본’.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도 통한다면 나의 ‘아가씨’ 사랑은 대단한 늦바람이고, 무섭기까지한 사랑이다. 각본과 영화로 각각 세 번을 보면서 애초에 시대상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인물에만 집중했다. 개인적으로는 퀴어 영화라고 느끼지 않았고, 야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그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히데코, 숙희, 후지와라 백작, 이들의 사랑이야기. 이모부가 만든 세계에 갇혀 살던 히데코가 그 세계를 뚫고 나오는 이야기, 아가씨를 기꺼이 밖으로 나오게 만든 숙희, 그 둘의 사랑이야기. 돈을 쫓았지만 결국엔 히데코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후자와라 백작, 기묘하게 아름답고 맑은 그들의 사랑이야기. 이모부에게 철저히 ‘목적’을 위해 편집적으로 배우며 자란 히데코.그녀는 신발이 가득 찬 신발장을 소유하고 있지만 집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거대한 저택 안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보다 더 고립되어 살아왔다. 유년시절은 일생의 뿌리가 되는 시기여서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다. 쉽게 뿌리칠 수 있는 성질이 못 된다. 책으로, 난잡한 그림으로 동물적인 본능에 가까운 사랑만 사랑으로 배운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끈적이고 더럽고 차가운 것이었으리라. 찬바람이 거세게 불면 옷깃을 더욱 여미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꽁꽁 여미고 지긋지긋한 이모부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을 매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히데코. 그런 히데코를 녹인 사람은 숙희였다. 거대한 태양과 같은 따뜻하고 풍성한 모성애로 그녀를 사랑해 준 사람. ‘일찍이 다섯 살 적에 진짜 돈, 가짜 돈을 구별할 줄 알았고 그 후로는 자물쇠 따는 법을, 소매치기 기술을 두루 익힌’, 하지만 젖이 나온 다면 일본으로 내다 팔 아이들에게까지 젖을 물렸을 천성이 따뜻한. 서로가 서로를 속였지만 사랑만큼은 속일 수 없었던 그 둘의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소름이 돋고, 눈물이 핑 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면 이 둘의 사랑은 진짜다. 히데코가 읽어온 책이 어떤 것인지 알고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서재를 엉망으로 만드는 숙희와 그런 숙희를 보며 “도둑, 소매치기, 사기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남숙희.. 내 동무” 라고 생각하는 히데코, 이 둘을 ‘사랑’ 말고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한편 돈을 쫓기 위해 히데코를 찾았으나 결국엔 히데코에게 조금씩 스며들어 사랑에 빠지게 된 후지와라 백작. 고문을 하며 히데코와의 초야를 묻는 코우즈키에게 ‘ 네 이놈! 히데코는 내 아내야. 제 아내하고 보낸 초야 얘기를 떠벌이는 놈이 어디 있다더냐.’ 라며 죽기 전 자신만의 방식대로 히데코를 지킨다. 생각해보았다, 내가 ‘아가씨’에 왜 이렇게까지 깊게 빠져들었는지.그건 아마도, 덜 통속적이고 더 통쾌한 사랑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 밤, 영화로 한 번 더 볼까 한다. 이번에는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각본을 책으로 엮었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에 이어 정서경 작가와 박찬욱 감독의 공동 집필로 쓰인 이 각본은, 섬세하고 울림이 있는 대사로 다시 한 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디테일한 결을 만들어낸 지시문과 해설을 읽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이로써 독자는 아가씨 각본 을 통해 ‘각본 읽기’의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과 신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을 읽으며 저마다의 호흡으로 이미지를 상상하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독자는 각본가와 만나고, 〈아가씨〉는 바로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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